본문 바로가기

읽다/사회와 인간

100년전 우리와 현재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얼마나 다른가_나를 배반한 역사_박노자

 

 

 

국사 교과서들이 개화기를 이야기할 때, 보통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민족적 저항과 자주적 근대화의 모색”과 같은 거대한 도식을 잘 사용한다. 여기서는 ‘우리 모두가 외세의 피해자’라는 공동의식을 주입시켜 민족적 단결을 기하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애국심에 불타는 선생님의 강의 속에서 일본은 한민족의 공공의 적이 되었고, 그 적개심을 구심점으로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똘똘 뭉치게 했었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러했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팀이 일본팀에게 지리라고 하면 단번에 매국노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고, 어느 분야에서든 적어도 민족의 원수 일본 놈들에게만은 절대로 저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2005년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가 크게 흥행을 했었다. 그 영화의 주된 내용은 동화마냥 단순하다.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문명과의 접촉도 거의 없는 유토피아 동막골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 그리고 순백의 지상낙원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서 남북한 연합군? 병사들이 힘을 모아 동막골을 구하게 된다는 매우 교훈적이고 신파적인 영화다. 물론 남북한 병사들은 모두 장렬히 전사한다. 얼마나 거룩한 희생이고 위대한 피해의식인가? 90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동원을 하지 않았던가!

 

지난 100년의 한국 현대사는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외세에 의한 남북분단의 역사.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우리가, 아니 국가가 만들어낸 현대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것은 어떤 의도에 의해서 과장되고 왜곡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당시의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현재에 평가된 역사의식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꼈던 세계관과 역사관은 어떠하였을까? 박노자의 『나를 배반한 역사』는 예전 신문기사나 논설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그 시대를 되짚어 본다.

 

■ 100년 전과 현재의 사회상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물론 연속적인 시간 가운데 현재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시대의 주된 사상이 지금까지 변종되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시대의 지식인들 즉 사회의 지도계층이 바라보는 세계관과 현재의 기득세력들이 바라보는 세계관의 유사성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시대의 목표는 조국 근대화와 선진화다.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표출되는 주국 선진화.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서구문화를 동경하고 우리의 것을 배척해야할 것으로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럽의 성에서 귀족처럼 살고픈지 캐슬, 파크라는 이름이 난무하고 외국 어학연수는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잘 살아보세~!”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초가집을 부시고 국적불명의 양옥을 새로 지으며 조국 근대화를 부르짖던 새마을 운동과 가시적 경제번영을 위해 약육강식의 진리를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를 전도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모습은 일본을 근대화의 전형으로 보고 일본을 닮으려 했고 범아시아주의(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세력을 세계로 넓혀나가자는 제국주의적 사고)를 동경하여 우리도 제국주의를 추구해야한다고 주장한 당시의 지식인들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중첩된다.

 

조소와 냉소에 그친 채 진정한 반 집단주의적 저항으로 나아가지 못한 후진형 개인주의는 과거 식민지 시절만의 문제인가? 현대인들이 직장에서 상사에게 무조건 고분고분하고 집에서는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권위주의 질서의 보루인 족벌신문을 읽으며, 소비생활에서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고 가정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주의자를 자처할 수 자처할 수 있을까?…(중략)…해외 어학연수나 이성교제, 유행 따르기에 여념 없는 속칭 개성시대의 학생은 과연 『만세전』의 주인공의 수준을 얼마나 벗어났을까? p188

 

채만식의 『치숙』을 생각한다. 치숙 속 ‘나’는 시대의 대세에 따라 일본인에게 아첨하고 잇속에 밝으며 성공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자신은 꼭 일본인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다짐하는 철없는 인물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지 않는가? 성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외국에 가서 학위를 따고 와서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누리겠다는 우리의 모습과.

 

 

 

나를 배반한 역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박노자
출판 : 인물과사상사 2003.04.26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