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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사회와 인간

호모 코레아니쿠스_진중권_현대 한국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호모 코레아니쿠스
국내도서>인문
저자 : 진중권(JUNGKWON CHIN)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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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폭력들이 있다. 그것을 없애려면 우리 주위의 익숙한 모든 것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_14p


싱가포르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은 미국 소고기 파동과 그로인한 촛불시위로 떠들썩했었다. 나는 멀리 타국에서 인터넷 조그만 창으로 사태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공간은 사람들의 소리로 아우성이었고, 전기의 속도로 전해지는 마치 게임 같은 상황들이 계속 업데이트 되었었다. 타지에서 한국 사회를 그것도 인터넷을 통해서 보는 경험은 매우 색달랐다. 한국 사회의 낯설음이랄까. 싱가포르에서는 전혀 겪을 수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감정과 논리 그리고 공포들이 뒤엉켜있었다.

저자 진중권도 그랬듯이 타지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주곤 한다. 영어공부를 하러 갔지만 내 머리 속에는 한국 사회는 무엇이고 지금 어디를 항해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막연한 질문들이 맴돌았다. 여러 신문 기사들을 읽고 예전에는 눈치 체지 못했던 기사의 의도들에 집중하게 되었고, 사회 주류세력들이 바라는 한국의 미래와 소위 진보세력이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바라는 한국의 미래 사이를 기웃기웃 거렸다.

'Dynamic Korea' 라는 정치적 산업적 구호처럼, 한국은 ‘Dynamic’ 하다못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나는 고유한 ‘한국성’ 또는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말처럼 습속‘habitus'는 존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진중권은 이 책에서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 사회를 낯설게 그리고 면밀히 해부하고 분석하고 있다.


미셀 푸고의 묘사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화는 잔혹하기 짝이 없어,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는 것이다._19p


급속하고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산업화와 근대화 속에서 한국인은 전근대적인 습속과 근대적인 습속 그리고 미래주의적인 습속까지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인을 ‘프랑켄슈타인’에 비유하고 있다. 그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에 ‘군대식’ 산업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신체는 기계화 되어버렸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것이 지상 최대의 강령 또는 목표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의 구성 자체가 설화적이다. 탁월한 영웅이 나타나고 미련한 국민들이 그를 믿고 따라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믿음은 한국 사회에 보편적이다._199


한국인의 전근대적인 습속을 저자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에서 찾아낸다. 그 중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 관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 때 대통령 뒷 담화 하는 것이 국민 스포츠라고 불릴 때도 있었다. 무슨 일만 나면 “이 모두가 노무현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한국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왕을 탓한다. 이는 “실업이 급증한 원인은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실업을 늘린 놈이 누구냐?”고 묻는 것과 일치한다. 고대 사회에서 왕 또는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존재라고 믿었을 적 사람들은 가뭄이나 기근이 생기면 왕을 채찍질을 하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현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선 때 상대정당이 정권을 잡는 일은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


아이가 사회로 나가는 것을 한국인은 ‘출세’로 이해한다. 가정에서 아이를 사회로 내보낼 때 중시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서로 편하게 더불어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남들의 위에 서느냐’ 하는 것. 한마디로 사회화를 ‘공공의 규칙’이 아니라 특권적 지위의 문제로 사고하는 것이다._154


한국에 사교육이 횡행하는 것 역시 ‘우리 아이들 함께 잘 가르치자’가 아니라, ‘내 아이만 잘 가르쳐 다른 아이들을 누르자.’ 는 생각 때문이다._155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육열이 높다고 자랑한다. 정녕 그것은 자랑할 만한 일인가? 교육열이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남보다 높은 그리고 좋은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것 아닌가? 수많은 기러기 가족들은 정녕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간 것인가? 아니면 남들 아이보다 영어 잘해서 좋은 대학 보내서 좀 더 쉽게 좋은 직장 잡게 해 주려고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회는 경쟁을 유도한다. 물론 경쟁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경쟁의 실패는 곧 사망을 뜻하기도 한다.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국가의 폭력에 시달리던 그들은 이제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생존의 정글에서 무차별한 시장의 폭력에 내맡겨졌다. 기분 혹은 무드는 인식에 앞서는 원초적 체험. 때문에 너무 강렬할 경우 그것은 이성의 작동을 연기시킬 수 있다. _182


비정규직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대부분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 공무원이나 공기업도 예전 같은 안전망이 되지 않을 듯하다. 사회는 점점 경쟁을 강요하고 낙오자들은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말하면 바보가 된다. 생존의 공포에 몰렸을 때 이성은 마비된다. 강자만이 살아남고 사회정의를 지키려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은 나쁘면 패배자 좋으면 천연 기념물이 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피 튀기는 정글 이것이 한국의 미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래의 생산은 제품의 생산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생산이다. 그런 시대에는 실제로 연구와 개발 이라는 정신적 노동이 가장 중요한 생산의 형태가 될 것이다._225

연구 자체가 생산이 되고 있다. 규모만 봐도 이들이 과거의 연구자가 아니라 사실상 생산자의 위상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앞으로 생산자 그룹에서 상위를 차지할 것이고, 앞으로 한 사회의 발전 정도는 노동인구 중에서 이들 연구 인력이 차지하는 양적 비율과 질적 수준으로 측정될 것이다._226


결국 미래의 주요 생산력은 상상력에서 나올 것이다. 저자는 ‘상상에 권력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의 산업은 물질적인 산업에서 비물질적인 산업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현재의 암기식 주입식 그리고 줄 세우기식 한국교육에서는 상상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어떻게 다양한 상상력과 컨텐츠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는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랑하지만 한국은 인터넷 ‘소비’의 강국이지 ‘생산’의 강국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문자 중심문화가 발달한 문화는 시각적인 이미지 보다는 컨텐츠 중심으로 발달하고 구술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이미지 중심적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단적인 예가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가 구글보다 인기가 많다. 네이버의 첫 화면에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정신없이 사용자들의 클릭을 유도 한다. 반면에 구글은 검색창 하나만 눈에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검색 엔진이 더 성능이 좋고 인지도가 높을까? 당연히 구글이다. 검색 성능면에서 네이버가 구글에 많이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네이버가 구글을 앞지르는 이유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성 그리고 구술문화의 발달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들뢰즈가 찬양하는 노마드 역시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에서 노마드의 시대는 날로 늘어나는 비정규직의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고용의 안정성은 사라지고, 사회는 여기저기 떠도는 새로운 유목민들의 디지털 스텝으로 변해간다. _295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하려면 신체를 늘 어느 쪽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잠재성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제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시에 다른 영역들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가진 제너리스트가 되어야, 유목으로 내몰릴 때에 제 분야를 신속히 다른 분야와 접속하여 필요한 기관으로 새로이 분화할 수가 있다. 미래의 신체는 줄기세포의 상태로 역 진화할 것이다._296


이종 간의 접속과 접합으로 이루어지는 하이브리드는 미래 사회상을 대표할 것이다. BT와 IT 그리고 NT의 결합 테크놀로지와 예술 그리고 컨텐츠의 결합이 시도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유토피아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더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가 사람들에게 상상할 마당을 만들어주고 도태될 지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