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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사회와 인간

청춘의 독서_유시민_정의로운 청춘 유시민이 읽었던 고전들

청춘의 독서
국내도서>인문
저자 : 유시민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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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시민을 좋아한다. 정치인으로서도 좋아하고 글쟁이로서도 좋아한다. 그는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이라고 부른다. 학자들처럼 거대한 담론이나 이론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들을 잘 조리해 팔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그의 글은 이해하기 쉽다.

 

2009년 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출간되었다. 언젠가 유시민이 국회의원 낙선 이후 20대 때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고 그것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청춘의 독서'다.

 

책이 너무 재밌어 거의 하루만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단순한 책리뷰라고 생각했는데, 줄쳤던 부분을 다시 갈무리 해가면서 보니 책이 그저 시대의 고전에 대한 감상만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결국엔 유시민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 하고 있었다.

 

□ 사기_ 사마천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욕망과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_181

 

□ 전환시대의 논리_리영희

 

이런 이유 때문에 그때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예비 지식인이라고 여겼고, 사회에서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한 삶은 어떤 모습인지, 자기 인생에서 지식인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는 학생이 많았다. 더욱이 그때는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유신 독재 시대였다. 유신 체제의 종말이 임박했던 1978년대 대학생이 된 나도, 막연히 지식인으로서 바르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리영희 선생처럼 살고 싶었다. 소신껏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공안 기관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을 꿈꾸었다. _44

 

 

□ 맹자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맹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나는 측정할 수 없는 사유의 깊이를 느낀다._131

 

□ 진보와 빈곤

 

정단한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세입자들을 국가가 불태워 죽인 ‘용산 참사’가 일어난 후 “진보와 빈곤”을 다시 읽었다. 용산 지구 도심 재개발은 낯선 사건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형성된 세계의 대도시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세희 선생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썼던 1970년대에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도처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용산 참사는 조지가 말한 대로 “한 조각만 소유하여도 기계 기술자보다 더 많은 소득이 생”기는 “금화로 포장해도 좋을 만큼의 값”을 가진 토지 위에서 벌어졌다. 좁은 골목과 낡고 초라한 주택, 퇴락한 골목 시장, 거기 발 딛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남김없이 쓸어낸 후에, 그 자리에 화려한 마천루를 세움으로써 상업과 생활 중ㅇ심지의 토지가 지닌 잠재적 시장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려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심 재개발의 목적이다._262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에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제목뿐만 아니라,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도 있다는 것이다. 헤드라인의 폭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신문들이 정말 금수 같은 그들의 ‘무지함’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한 번쯤 연구해보는 것은 범죄학의 과제일 것이다._271

 

 

□ 역사란 무엇인가_E.H 카

 

오늘날의 모든 언론인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적절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가 말한다고들 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줄 것인가, 또 어떤 순서로 어떤 맥락에서 말하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인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자루와 같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실은 일어나지 않는다._역사란 무엇인가 14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_303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진보는 추상적인 말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표는 역사의 흐름에서 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 밖에 있는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_역사란 무엇인가 170

 

나는 단지 역사가의 직업이 그가 속한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이 사건만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역사책을 볼 때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 집필되었고 언제 출판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_역사란 무엇인가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