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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사회와 인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_ 고미숙_공부한다는 것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국내도서>인문
저자 : 고미숙
출판 : 그린비출판사 200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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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왜 하지?”

“돈 많이 벌려구요.”

“얼마나 벌고 싶은데?”

“한 10억 쯤 있음 좋겠어요.”

“지금도 잘 사는데 왜 그 돈이 필요해?”

“....”

“예전엔 다들 가난해서 대학 가서 고시를 보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 말고 먹고살 방법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잘살잖아? 근데, 왜 돈을 위해 공부를 하지?”

“음...... 암튼 10억쯤 있음 마음이 든든할 거 같아요.”

 

위 대화는 저자가 어느 지방의 영재학교에서 한 학생과의 대화를 적어 놓은 것이다. 저자가 참 ‘얄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의 대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어린’ 학생을 추궁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도 왜 학생이 10억쯤 벌고 싶어 하는 줄 안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고 사회의 현실이다. 모든 가치를 서열화 그리고 환전화 시켜 버리고 거기에 1열 종대로 섯! 이것이 대한민국의 거부하지 못할 현실이다. 그런 사회를 사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왜 하지?”라는 뻔뻔스런 질문을 던지니 저자가 얼마나 얄미로운가?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이 뻔뻔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의심하고 질문하는 일, 이것은 새로운 것을 깨닫기 위한 첫 단계이니까.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_이탁오, 분서

 

저자 고미숙씨가 말하는 공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공부가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공부는 한마디로 독서. 그것도 그냥 시시껄렁한 재테크나 자기개발서 아니면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는 것이다. 앎에 대한 열망으로 고전을 섭렵하여 무공의 달인의 경지에 올라보자 호모 쿵푸스! 하지만 무협지의 중원처럼 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은 법

 

교수와 학생을 스승과 제자로 엮어주는 지적 파토스가 사라져버렸다. 선후배 간의 지적 유대가 깨어진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이제 대학에선 패기에 찬 논쟁도, 활발한 소통도 찾아볼 길이 없다. 고로, 대학은 더 이상 ‘큰 배움터’가 아니다. 그럼 대학생들은 대체 뭘 하냐구? 취직 시험에 올인하고 소비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고, 노후 대책에 골몰한다. 청년이라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그들._23

 

한마디로 대학생이고 대학원생이고 심지어 교수들조차 독서인이 아니라, 소비문화의 주체가 되어버린 셈이다._59

 

학교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예로 만든다._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나는 지금 대학생에게 그리 큰 희망을 걸지 않는다.(나도 대학생이지만) 나도 한때 대학생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학과 공부에 대한 또는 진리탐구에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대학생. 때로는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보려는 노력들 이런 것들, 바로 능동적인 젊은 지식인이 내가 꿈꾸었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은 취업과 학점에 억매여 있는 ‘대등’학교 수험생들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문화는 스스로 생산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본다. 축제만 해도 그렇다. 대학교 축제는 말 그대로 대학생들의 ‘축제’다. 그런데 그 속에는 대학생들의 문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껏 자기들끼리 준비한 것이라고는 쇼 적인(하지만 매우 아마주어적인) 것이 주류를 이룬다. 기성 가수들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뭐 이런 것들이 우리의 대학축제를 대변한다. 그것도 별로 인기가 없어, 학생회는 유명 연예인을 부르기에 급급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말이다. 대학축제에는 사회적 담론들은 빠져있고, 상업적 유흥문화만 넘쳐난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 이미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실을 생각해 보라. 예전 대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학문 탐구에 열중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나? 하지만 지금은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학문 탐구하라는 지성인들의 충고는 먼 하늘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맞다. 이 시대를 사는 대학생들은 생존하기 위해 공부한다. 삶을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는 대학생들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 보다는 누가 더 빨리 시스템에 적응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노회’한 젊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름하여 대중지성 꿀벌이나 개미떼처럼 언제나 무리로 움직이고, 오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대중지성은 ‘무리지성’이기도 하다. 대중보다 더 대중적이고, 지식인들보다 더 지성으로 충만한 집단._25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건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다._81

 

저자는 ‘대중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대중보다 대중적이고 지식인들 보다 더 지성적인 집단. 권위적인 제도권 밖에서의 상생하는 지성 네트워크가 대중 지성일 것이다. 정말 순수한 진리탐구를 위한 집단의 모임. 가슴이 벅차오르는 앎에 대한 희열과 욕구, 하지만 냉랭한 현실과 맞닥들이면 금세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 집단을 바라보게 된다. 고미숙씨가 속해있는 ‘수유 너머 공간’ 연구소는 그런 대중 지성들의 ‘코뮌’이다. 이곳에서 사회학 강의와 철학 강의 그리고 동양철학 강의 등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수유 너머 공간’의 탄생을 한국 인문학 역사 속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고전 리라이팅’ 시리즈를 출간했고, 여러 대중적이고 전문적인 인문학 서적들을 출간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 한계가 있다. 그 소속 구성원들 대부분이 지식인들이라는 것. 그러므로 하루살기에 힘이 겨운 서민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동화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삶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세계관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 삶은 풍요롭게 사는 방법은 경제적인 요소에만 있지 않다. 남과 비교하는 열등의식 또는 우월의식 속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나는 사회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런 조그만 운동들이 사회를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한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에 있다고 _66 하지만 대한민국의 학교는 지식을 철저히 사적 생산물로 취급한다. 경쟁과 점수에 의해 그 성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_92 한 때 유행이었던 ‘평생교육’이라고 불리는 교육시스템도 배움에 대한 욕망보다는 ‘잉여 노동인력’의 생산성을 계속 유지시키거나 향상시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평생공부’를 주장한다. 여기서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_195 그리고 다시 말한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河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뿐_49 이라고. 즉,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공부다._87

 

그가 제시하는 공부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암송이다. 암송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는 암송이란, 몸 깊은 곳(신장)에서 나와 발성기관을 통해 내뱉는 ‘낭송’은 단순히 두뇌가 아닌 온몸을 훈련하는 과정_96 이기 때문이다. 또 암송한 뒤에는 자기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구술해 보라고 한다. 구술 능력이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의 표현이다. 그것이 없이는 이야기를 엮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요컨대, 삶에 대한 통찰 혹은 애정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엮는 능력이 생기고, 거꾸로 이야기의 맛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 인생에 대한 깊은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하기 전에 이 능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 즉, 책을 읽은 다음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쓰게 하는 것보다 먼저 그것을 자기어법으로 재현해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발성과 몸짓, 호흡 등 보디랭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하게 되고, 무엇보다 소통의 의미와 중요성을 절로 터득하게 된다._102

 

다른 한 가지는 글을 쓰는 것. 자폐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공적 글쓰기, 그리고 공부해서 남 주는_214 글쓰기가 그가 추구하는 글쓰기 이다.

 

아무리 개성이 강조되는 사회일 지라도 남들과 다르게 살기란 쉽지 않다. 제도 밖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힘과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산에 올라갈 수 있듯이, 배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_180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항상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_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