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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수필과 소설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하여_화장_김훈

 

 

 

“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수련의가 시트를 끌어당겨 아내의 얼굴을 덮었다. 시트 위로 머리카락 몇 올이 빠져나와 늘어져 있었다. 심전도 계기판의 눈금이 0으로 떨어지자 램프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면서 삐삐 소리를 냈다.

휴대폰이 죽는 소리는 사소했다. 맥박이 0으로 떨어지면서 아내가 숨을 거둘 때도 심전도 계기판에서 그런 하찮은 소리가 났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어떻게 보면 가장 무겁고 비감한 현실에 맞닥뜨린, ''는 정작 슬픔이나 애통함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절벽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음에 절망하고 체념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가끔 나의 존재가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고통당하는 사람보다 그 고통을 목도하고 느끼게 되는 고통' 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인공의 고백처럼, 아내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더 이상 충격적인 고통은 아닌 것이다. 고통의 내면화가 둔감화를 초래한 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 ''는 추은주를 찾는다. 죽어가는 아내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을 소유한 회사 직원인 그녀에게서 생의 충동을 느낀다. 불륜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 그녀는 삶의 충동이었고 생의 갈망이었다.

 

회사 광고기획을 맡은 ''는 장례절차 중에도 화장품 광고 계획을 준비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의 중압감 속에 화장품 새로운 모델은 결국 '내면'보다는 '가벼움'으로 컨셉이 정해졌다아내는 떠났고 추은주도 떠났다. 비로써 나는 '방광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게 됐고, 깊은 안도를 느낀다. 가벼워져라...가벼워져라...

 

 

 


화장(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4년도)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04-02-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4년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작인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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