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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수필과 소설

침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소유하는 일_산에는 꽃이 피네_법정

 

 

 

 

시험기간은 지루하다. 공부할 것은 많지만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는 일은 정말로 고역이다. 잘 봐야한다는 중압감으로 마음은 답답하고 귓가에는 째깍째깍 돌아가는 무심한 시계소리만 들린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와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 예전에 시험공부가 지루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책상 옆에 놓아둔 이 책을 읽었다. (공부는 안하고 시험기간에 다 읽어버렸다.) 고등학교 때에는 뻔한 얘기라고 생각해서 조금 읽다가 책을 덮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담겨있었다.

 

 

이 책은 『무소유』 법정 스님의 글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님이 엮은 책이다. 표지도 아주 깔끔하다. 작은 붉은 색 꽃과 그 아래 조그맣게 집이 그려져 있다. 표지 하나만으로도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침묵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 양식이다. 태초에 침묵이 있었다. 언젠가 명동에 있는 카톨릭 여학생관에서 무슨 강론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만일 성서를 편찬했다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기 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노라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그러자 어떤 남자 신도가 불쑥 일어나더니 그게 아니라며 태초에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혼을 울릴 수 있는 말씀이라면 무거운 침묵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침묵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서 움이 트고 잎이 펴고 꽃과 열매가 맺는다.

 

 

법정 스님은 가난한 생활과 가난한 마음을 가르치신다. 무소유의 마음....예전에 에뤼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은 때에는 책 내용이 이해되지가 않아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글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온다. 복잡한 수사나 뽐내는듯한 어려운 문장은 찾을 수가 없다. 스님의 문장은 간결하고 깨끗하다. 그래서 스님의 글은 우리의 영혼을 더 맑게 공명시킨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왜 존재하는지 망각하게 될 때가 많다. 마치 나는 거대한 조직체 속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속세를 떠나보고도 싶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 법정스님처럼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기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침묵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내 자신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씩 버려야 한다. 많은 소유는 나를 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침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소유하자. 아무리 무소유라고 하지만 그 정도는 소유해도 될 것 같다.

 

 

 

 

 

 

산에는 꽃이 피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법정,류시화
출판 : 문학의숲 200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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