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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강연

[강연] 김훈이 바라본 수능시험날 풍경

 

 

 

사근동 길을 너머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오마이TV에서 진행한 김훈 '공무도하' 저자와의 대화를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김훈은 강의 주제가 '공무도하' 저자와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 대신에 그가 바라본 이번 수능날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그는 말로 그의 생각을 전달하였지만 마치 그의 책 속의 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간결하고 신중한 문장들이 무겁게 담겨나왔다. 그는 지극한 현실론자였다. 그 누구보다 삶이 비정하고 비루하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전에 그의 에세이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유독 아래의 문장이 떠올랐다.

 

 

 

"밥벌이의 지겨움 中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김훈"

돈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구석기의 사내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 먹을거리를 포획할 수가 없다. 우리의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밥은 끼니 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 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적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시 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내고 먹이만을 집어 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시 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어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이다. 돈과 밥 위에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이상론자들을 혐오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그의 글은 현실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기운이 맴돈다. 그점이 바로 김훈 글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비정한 현실 속을 인정하고 또 긍정하는 인간의 비루한 삶이 바로 삶의 아름다움일 수 있다는 그의 생각. 그것이 우리를 하루 하루 버티게 해주는 삶의 기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