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다/사회와 인간

철학자 김용석의 유쾌한 세상 관찰_일상의 발견_김용석

 

 

 

 

출근 버스 안에서 낡은 책 하나를 꺼내 든다. 책의 두께는 한 400페이지 되는 것 같다. 두께는 속임수였다. 400페이지는 안 된다. 종이 질이 좋지 않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지 않은 책임에는 분명한데 이렇게 너덜너덜한 걸로 보아 종이의 질이 거의 재활용지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보기와 달리 가벼워서 다행이다. 일상이라는 것은 가볍게 느껴지지만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무겁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까?

 

서양 철학자 김용석의 책『일상의 발견』은 전작 『깊이와 넓이 416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서 그는 『416장』에서 말한 여러 철학적 개념을 일상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이와 넓이 416장』보다는 『일상의 발견』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 김용석의 예리한 일상의 관찰은 우리 주변의 일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일상이란 우리주변에서 반복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러려니 하기 마련이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보면 그 속에서 또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리의 사회문화와 잠재의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은 더욱 권력적일 수도 있다.

 

1- 일상 속 야만과 문명

2- 당연함의 거짓말

3-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4- 넓고도 넓은 세상

 

저자는 이방인 아닌 이방인(그는 로마에서 오래 생활하였다.)으로서 사회적 통념을 해부하는 날카로운 눈으로 일상을 관찰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말이나, 상식, 사회적 통념, 관습, 제도 등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고와 행동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추출하고, 뒤집는다. 그리하여 이제 당연한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것은 불합리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가 발견한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은 때로 문명의 이름을 내세운 야만의 모습으로, 때론 익숙한 것과 당연한 것이 가장한 불합리한 것과 부당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삶은 편리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편리”는 시간과 노동의 절약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문명과 어울리지 않는? 야만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기계의 발달로 인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문화적으로 바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동물의 세계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경쟁과 동물적 야만성으로 이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인정은 점점 사라지고 “약육강식”이라는 네 글자가 마치 세상의 진리인양 판을 치고 있다. 그리고 서점에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 난무하고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내 생각에는 책 팔아먹는 저자가 정말 처세술의 달인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던 것 그리고 문화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점점 쇠퇴해하는 것일까? 일상은 이렇게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또한 환자를 위하는 마음은 잃어버린 채 첨단 의료 기술만을 앞세우는 의사들의 모습이나, 공공장소에서 주책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모두 아줌마라고 여기는 '아줌마 이데올로기', 감사의 뜻은 사라진 채 뇌물(?) 수수의 관행이 되어버린 '' 문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남녀 한 쌍의 뉴스 앵커 구성, 열린사회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획일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의식과 행동 등이 모두 그의 눈에 잡힌 일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꼭 이렇게 일상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된 것만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축제는 공동체적 어울림의 절정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축제 같은 삶은 누구든 희망하는 삶이다. 누구나 희망하는, 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어내기 힘든, 그래서 이상향의 아픔으로 동경하는 삶이다. 바로 이틈에 술자리가 있다. 술자리가 제공하는 삶의 유토피아적 순간이 자리 잡은 것이다.

 

밥이 생존이라면, 술은 실존이다.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 밥이 생존의 얼굴이라면, 술은 실존의 가면이다. p229

 

저자 말인 즉, 술자리는 반복되는 일상의 권력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적 시간을 제공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말인가? 금요일 저녁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고 싶다는 욕망. 축제의 술자리. 바로 일탈의 욕망인 것이다.

 

이렇게 저자가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해부하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그의 말마따나 "모든 추함을 명백히 들추어내는 것은 새로운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 p266"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