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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수필과 소설

학문의 즐거음_히로나카 헤이스케_보통 머리를 가진 사람이 학문을 하려는 자세에 대하여

학문의 즐거움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히로나카 헤이스케 / 방승양역
출판 : 김영사 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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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구서적에서 이 책을 사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춘여고 돌담길을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중학교 때였다. 안철수 씨가 티비에 나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책으로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꼽은 것을 보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사버린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몇 장을 읽지 않고 책장에 처박아 두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다시 펴든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안철수 씨가 힘들 때 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회고한 것처럼 나도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중학교 시절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던 나의 성적은 머리가 좋은 친구들만 모여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중하위권으로 처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깊은 좌절감도 수없이 느꼈다. 특히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열등감이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내 친구들 보다 못할까? 나는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의기소침해지고 얼굴에는 우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번은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서러워 수업시간에 펑펑 울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 되었다간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 때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체념의 기술을 마음 속으로 익혔다.

 

이 책의 저자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드상을 수상한 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일생동안 소름끼칠 정도의 천재들을 여럿 만났지만 한번도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바로 체념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보통 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도 천재들만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체념 기술이다. 하지만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잡으면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긴다. 그리고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기의 정신 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는 일이 없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창조로 이어져갈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_99

 

고등학교 때에는 1년에 한 번, 조회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2학년 때 나에게도 발표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발표 주제로 ‘체념의 기술’을 잡았다. 발표 당일 날 발표를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올 때 사회를 보신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약간 붉어지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발표를 많이 했지만 나는 반대로 체념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선생님은 ‘학생 여러분 그래도 체념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며 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를 고민했다. 해답은 결국 ‘노력’ 밖에는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른 사람이 1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야 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_56-57

 

보통 사람이 우수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성공 경험만을 쌓아서는 안 된다. 때로는 성공에 필요한 만큼 노력을 했는데도 실패하는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창조의 본질도 창조의 구체적인 방법도, 또 그 바탕이 되는 핵심도 천재가 아닌 우리로서는 실패를 통하여 몸소 터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_107

 

이런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고, 저자의 말대로 공부에 집중이 잘 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체념’하는 일이었다. 결국 성적은 올랐고 얼굴의 그늘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의 기본적인 신조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건축음향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건축음향은 사실 나에게 생소한 분야이다. 이 분야를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스컴에서도 모두들 앞으로 전망 있는 분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앞으로 유망하고 발전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찾아서 공부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방법이 옳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친환경 기술’이 전망 있다고 해서 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한다면 다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은 가치 없는 일을 하는 것일까? 그런 논리라면 몇 년 뒤에 친환경 기술 붐이 잦아들고 다른 분야가 다시 주목받는다면 다시 새로운 분야로 전향해야 옳은 것일까? 물론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자기 장래를 결정하려고 할 때에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가 있다. 예컨대 ‘성적이 이 정도니까 저 대학의 이러한 학과에 진학하자.’ 라든지 ‘이러한 직종이 유망하니까, 이 기업에 취직하자.’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 정보로부터 필요를 도출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장래를 결정한 사람은 결정한 것이 욕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디에서인가 좌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학문을 하고 싶다.”, “나는 이 일에 종사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_153

 

욕망이 창조에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내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기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사회 풍조라든가, 유행이라든가, 혹은 매스컴이 제공하는 정보라든가 하는 것으로 형성된 경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욕망은 정말로 힘없이 부서지기 쉽다. 외부의 정세가 바뀌면 당장이라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욕망이다. 그리고 창조를 지속시킬 원동력이 될 수 없다._172

 

저자는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목표가 없으면 앞으로 밀고 나갈 정신 에너지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_114 그 에너지는 바로 그것을 해내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욕망은 창조에 대한 욕망이다.

 

사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배움에는 기쁨이 있다. 사는 것은 또한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창조에는 배우는 단계에서 맛볼 수 없는 큰 기쁨이 있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창조하는 데 본래의 의의가 있다. 발견과 창조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의 주고받음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평가할 가치도 없다. 여러 가지 지식은 생각하기 위한 자료이며,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_141

 

나는 학문에 길에 들어서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나는 대학원 생활 동안 여러 편의 논문을 쓸 것이고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마도 힘든 순간들과 자주 부딪힐 것이다. 그때마다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호황도 좋고 불황도 좋다._145” 라는 마음가짐으로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한다. 지금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나의 길을 밝힐 마음속 등대를 세울 때라고 믿는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왔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우수하더라도 업적을 쌓지 않으면 학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_184

 

문제와 함께 잠자라

Sleep with problem._162

물기 위해서는 이를 단단히 하라

You need strong teeth to bite in._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