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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수필과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알랭 드 보통_사랑에 대한 예민한 관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영목역
출판 : 청미래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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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 '보통' 민감한게 아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짜증 비스므리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사랑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그냥 어떤 현상에 예민한 아저씨가 궁시렁대는 글처럼 느껴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예전부터 느껴왔다고 생각한 것들을 "도통" 따라갈 수 없는 문체로 멋드러지게 휘갈려 놓아서, 그 능력에 내가 꽁한 열등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데 사랑은 정의할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사랑의 실체는 없고, 다만 현상만 있을 뿐이라는 것."(음...뭐래니? 결국 나도 헛소리를 나불대고 있구나.)

 

혁명의 시작은 심리적으로 볼 때 남녀관계의 시작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통일에 대한 강조, 전능하다는 느낌, 비밀을 없애고자 하는 욕망 [비밀에 대한 공포는 곧 연인의 편집증과 비밀경찰을 낳는다.]_92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_116

 

눈에 보이는 것은 몸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홀린 연인은 영혼 역시 그 껍질과 똑같기를 바라게 된다. 몸이 거기에 어울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를, 살갗이 표현하는 것이 속에 든 본질이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몸 때문에 클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에 희망을 품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랑했다. 그것은 매우 가슴 설레는 희망이었다. _124

 

나는 클로이가 전에 “내가 몇 년 전에 만났던 그 남자 있잖아” 하는 말을 듣고 갑자기 슬퍼진 적이 있다. 나 자신을 몇 년 후에 [참치 샐러드를 사이에 두고 그녀를 마주보고 있을 다른 남자에게] “내가 얼마 전에 만났던 그 건축한다던 남자......”로 묘사하는 광경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과거의 연인에 대해서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나는 불가피하게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재 그녀에게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어떤 정의[“남자”, “남자 친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클로이의 눈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단순화한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_156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구애와 마찬가지로 떠나는 일도 과목이라는 담요 밑에서 고통을 겪는다. 의사소통 체계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논의하기조차 힘들다. 그것은 양쪽 모두 그것을 복원하고 싶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연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정직한 대화는 짜증만 일으키고, 그것을 소생시키려다가 사랑만 질식시킬 분이다._204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설이 생긴다. 만일 상대가 사랑으로 보답한다면 그 즉시 그 사랑이 더렵혀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불평할 것이다. 내 강요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_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