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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영화

한국 자본주의 사회 속의 연애란?_멋진하루

 

 

 

"마석? 그게 어디야?"

"춘천 가는 길 어디라는데, 암튼 뭐 사자마자 두 배쯤 올랐데."

"나도 땅이나 사둘 걸 그랬나?"

 

 

영화는 두 남녀의 너무도 일상적인, 아니 일상적이 되어 버린 대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경마장 풍경을 한번 훌 훑는다.

 

 

"몰라 그냥 아무거나 찍어."

"아.. 나 경마는 공부 안해봤단 말야."

 

 

부동산과 경마, 주식, 사람들은 온통 먹고사니즘에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년전 연인이었던 희수와 병운이 채무관계로 재회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경마장에서 병운과 마주친 희수가 건낸 첫마디.

 

 

"돈 갚아."

 

 

희수는 서른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애인도 없다. 직장도 없다. 통장도 바닥이다. 완전 노처녀 백조다. 불현듯 병운에게 빌려준 350만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결심한다. 그 돈을 받아내겠다고.

 

 

병운은 결혼을 했고, 두 달만에 이혼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 실패해서 지금은 잘 곳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병운은 천진한 뻔뻔함으로 꾼돈 350만원을 갚기 위해 다시 돈을 꾸러 다닌다. 희수와 함께. 그러면서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 무비가 되어버린다. 이 둘은 하루동안 돈을 꾸러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사장, 예전 동아리 후배, 초등학교 동창, 텐프로 등 등. 재밌는 것은 돈을 꾸러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라는 것. 병운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남성캐릭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성다움이란 전혀 없다. 여자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은 기본이고 여사장에게 애교를 부리며 닭살스런 맨트도 자연스럽게 날린다. 다른 사람들이 자존심을 구겨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긴다. 이것을 능글맞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철이 없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수완이 좋다고 해야하나.

 

반대로 희수는 자존심도 강하고 현실적이다. 자신과 다른 병운에게 끌렸지만 잘나가는 펀드메니져에게 가버린다. 하지만 결혼까지 약속한 펀드 메니져가 실직하자 미련없이 헤어진다. 병운은 철없는 긍정주의자다. 사업을 벌리다 집안을 다 말아먹고도 즐겁게 웃으며 "스페인에 막걸리집"을 차릴 발랄한 다음 사업을 구상한다.

 

 

희수는 병운과의 동행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 속 과거 자신의 모습과 마주친다. 서로 노래를 함께 듣던 연인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어느 여자의 이별통화.

 

 

"네가 싫어지거나 뭐 그런건 아니야.

이런 관계가 나한텐 좀 버거운것 같아서.

그 사람...편해 나한테도 잘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자존심 강하고 차가운 것 같지만 여린 마음을 가진 희수와 철없어 보이고 무책임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마음을 가진 병운이 불편하게 시작한 동행은 석양, 어스름으로 향해간다. 그리고 희수의 마음에도 병운을 향한 그리움이 노을 진다.

 

 

"실컨 욕이나 해줄려고 그랬는데...

만나서 돈없다고 그러면 실컨 욕하고 갈려고 그랬다고."

 

 

둘은 서로 달라서 만났고 또 달라서 헤어졌다. 

긴 하루를 보내고 둘은 다시 헤어진다.

삶은 힘겹다.

주차료를 내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돌아다녀야 하고, 

그 잘난 돈 때문에 자존심도 구겨야 할 때도 생긴다. 

희수는 결혼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돌아갈 곳은 88만원 비정규직 자리 뿐이다.

어쩌면 희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병운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러나 사람 향기가 나는 병운은 가뭄 때 논바닥처럼 갈라진

희수의 마음을 잔잔히 적셔 준다.

 

 

"언젠가 말이야. 내가 힘들었던 때가 있었거든.

근데 효도르가 꿈에 나왔어. 한국말을 하더라구.

나한테 그랬다?

'너 괜찮아? 너 많이 힘들지.'

그 말에 나, 가슴이 막 벅차서 대답했어.

'당신이 있어서 난 괜찮아.'

그리고 한동안 마음이 정말 괜찮은거야.

신기하지?"

 

 

영화는

엷은 미소를 띄고 돌아가는 희수.

그리고 병운이 쪽지에 써준 차용증.

마지막으로 "Cho's kitchen_rice wine" 이라고 써 있는 간판을 보여준다.

그 둘의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해본다.

멋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