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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영화

[영화] 사랑, 이별 그리고 치유에 대하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거야.." 라고 베르나르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 다시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거기엔 또다시 흘러가버린 1년이란 세월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요, 알고 있어요.." 라고 조제가 말했다

(훌륭한 구름 중에서)


 

어떤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그 영화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하고 돌게 하는 영화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나에게 그런 영화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은 굉장히 독특하다. 제목을 봐서는 도저히 영화를 추측할 수 없다. 무슨 영화일까? 호랑이랑 물고기랑 뭘 했다는 걸까? 그리고 조제는 또 뭐야?



 

영화는 빛바랜 사진들과 함께 시작한다. 단편적인 단어들을 나열한 영화의 제목처럼 아직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는, 추억의 조각 같은 사진들이 나열된다. 남자 주인공인 츠네오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언덕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몇 초 뒤에 담요로 둘러싸인 유모차 같은 것이 굴러와 도로 난간에 부딪힌다. 수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수레에 다가서는 츠네오, 조심히 담요를 들춰본다. 유모차 안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조제. 다리가 불편한 그녀는 할머니와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다. 조제를 도와준 츠네오는 할머니의 초대로 그녀에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된다. 요리를 하는 조제를 바라보던 츠네오는 깜짝 놀란다. 보통사람처럼 요리를 하던 조제가 조리대 의자에서 툭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츠네오는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감독은 조제가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조제가 생활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주로 생활하는 그녀의 조그만 방은 마치 인형의 집처럼 꾸며져 있다. 조제의 방은 그녀가 꾸며놓은 조그만 환상의 세계이다. 또한 조제가 가지고 있는 여기저기 반창고 같은 누더기가 붙여져 있고 눈 대신 단추가 달린 토끼인형은 조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츠네오는 같이 잘 여자는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자는 없었다. 하지만 조제는 달랐다. 츠네오는 비록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었지만 때론 당당하고 때론 순수한 오로라를 내뿜는 조제에게 끌린다. 조제에게 바깥세상은 호기심 가득한 곳인 동시에 두려운 곳이다. 츠네오는 그녀를 위해 바깥세상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조제, 너는 고장난 물건이야! 고장난 물건이면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할머니는 조제에게 이렇게 꾸짖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츠네오는 자신이 조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제를 보살펴주기 위해 그녀와 동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츠네오는 자신의 등에 업힌 조제가 무겁게 느껴진다.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장애의 무게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녀와 함께 공유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들...그 벽들이 츠네오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일 것 같은 여행을 떠난다. 바다. 조제는 츠네오가 자신의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슬퍼하려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게 되면 난 길 잃은 조개 껍데기처럼...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만은 않아...

 

결국 그 둘은 헤어진다. 츠오네의 말을 빌리자면 담백하게...아니 츠오네는 조제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조제도 떠나는 츠오네를 애써 잡으려하지 않는다.


 

조제와 헤어진 뒤 여자친구와 길을 가던 츠오네는 조제 생각이나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슬피 울고 만다. 헤어진 뒤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그렇지 않았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보고 돌아오는 조제를 보여준다. 집에 돌아와 자기가 먹을 만큼의 생선을 굽는 조제의 얼굴에는 아직 외로움과 슬픔이 남아있다. 1인분의 삶. 하지만 이제 홀로설 수 있는 조제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더 눈물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