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어학연수 할 때 본 영화 ‘월E’는 내가 내용을 이해한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다.(거의 무성영화라고 보면 된다. 대사가 없는 만큼 감정을 전달하는 디테일이 감동적이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그냥 잘 만들어진 어린이용 영화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냥 어린이용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다시 본 월E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로봇이 감정 또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월E는 자의식을 가진 로봇이다. 청소로봇 월E는 자신의 임무인 청소뿐만 아니라 취미인 수집활동도 함께 한다. 이러한 월E의 행위는 큰 의미를 갖는다. 취미를 갖는 다는 것은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월E는 설계자가 그려준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학습할 수 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식물 채집 임무 안에서만 행동하는 영화 초반의 이브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로봇은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일까? 월E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수리한다. 700년 동안 월E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식을 자각한다. 솔직히 이것은 과학적이기 보다는 우화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신경과학자들이 발명한 인공신경망이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영화 ‘공각기동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인형사’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자신을 생명체로 규정한다. 이에 인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어떻게 생명체일 수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생명의 본질이 핵산의 기계적 메커니즘이고 종류는 다르지만 그러한 기계적 메커니즘이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생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질문은 ‘미래의 인간과 사회는 진보하는가?’이다. 영화 속 미래인은 운동부족으로 뼈가 퇴화되어 스스로 걷기도 힘들다. 또한 그들은 자동 의자에 앉아 거부감 없이 기계의 통제를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사회를 진보로 받아들여야 할까? 진화론자들은 생물이 점점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미래인은 퇴보한 것은 아닐까? 또한 기계통제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미래인은 통제된 우주선을 거부하고 지구행을 택한다. 기계의 진보는 인류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지구로 돌아온 미래인은 월E처럼 노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인은 노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인류와 기계가 ‘공생’하는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진보의 의미’가 곧 ‘편리한 삶’을 의미하는 사회 속에서는 기계와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가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는 BNL 의 엑시엄 우주선처럼 기계는 ‘인간’을 닮아가고 인간은 ‘기계’를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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