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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수필과 소설

술꾼의 품격_임범_술과 영화 그리고 인생

술꾼의 품격 (양장)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임범
출판 : 씨네21 201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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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술마시는 걸 즐겨한다. 물론 과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일과를 끝내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나에게는 작은 행복이다. 그래도 요새는 가끔 집에 돌아갈 때 캔맥주 한 캔을 사서 먹곤 하지만 싱가포르에 있었을 때는 지갑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맥주 한 캔 살 때도 벌벌 떨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저녁이면 "Friday night"이라는 거창한 핑계를 대고 큰 맘먹고 가장 싼 타이(Thai)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앙한 술을 마셔본 것은 아니다. 양주는 친구가 아버지 몰래 가지고 온 "군납" 밖에는 맛 본적이 없고, 칵테일도 별로 마셔본 적이 없다. 그냥 일반적인 소주와 맥주만 드립다 마셨던 것 같다. 그래도 맥주는 나름 다양하게 맛본 편인데, 나는 버드 와이져가 참 맛있는 것 같다. 버드와이져를 자세히 보면 "King of beer"라고 써있는데, 친구 두성이와 나는 맨날 버드와이져를 "거지 왕"이라고 부른다. 가격이 가장 싸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내가 버드와이져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지 타락해서 인간이 술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알콜은 가난하고 문맹인 이들을 문학 심포니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올더스 헉슬리,<모크샤>_5

 

술은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또는 최악의) 발명품이다. 어느 문명이든 술을 만들어 마셨다. 때문에 술 속에는 각 문명의 문화가 녹아 들어 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나라의 술을 마신다는 것은 농축된 그 지역의 문화를 음미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의 창작혼을 불태우는 장작으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술 때문에 싸움이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술이 아무리 인간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인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왕 술을 마실꺼면, 술에 대해 알고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고른 책이 바로 "술꾼의 품격"이다. 

 

자신 스스로를 애주가라고 칭하는 임범의 "술꾼의 품격"은 주로 스피릿(Spirit)과 맥주 그리고 칵테일을 그와 관련된 영화와 함께 이야기 한다. 이 책에는 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술자리에서 술꾼의 품격을 높여주는? 안주꺼리로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증류된 독주를 영어로 'Spirit'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증류 과정에서 기화되는 모습이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 같아서라고도 하고, 술 취하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기 때문에 그랬다고도 한다. 여튼 참 멋진 표현이다. 나는 "Spirit"을 마신다. 캬. 멋지지 않은가.(독주를 뜻하는 스피릿은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에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증류주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철학자 김용석의 말을 빌려보자.

 

축제는 공동체적 어울림의 절정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축제 같은 삶은 누구든 희망하는 삶이다. 누구나 희망하는 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어내기 힘든, 그래서 이상향의 아픔으로 동경하는 삶이다. 바로 이 틈에 술자리가 있다. 술자리가 제공하는 삶의 유토피아적 순간이 자리 잡은 것이다. 밥이 생존이라면 술은 실존이다._일상의 발견_229

 

말인 즉, 술은 반복되는 일상의 권력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적 시간을 제공한다. 금요일 저녁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축제의 욕망 바로 일탈의 욕망인 것이다. "술꾼의 품격"은 영국 출장갈 때 챙겨가서 모두 읽었다. 그리고 출장 기간 12일 동안 하이네켄, 기네스, 수퍼복, 위스키, 와인을 마셨다.(물론 술만 마시다 오지 않았음.) 사람의 기억이 오감이 뒤섞여 형성된다면 이번 유럽 여정은 술 내음이 만든 기억이 많이 남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한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을 갈무리 해본다.

 

이십대 초중반의 남자 형제가 밀주 집에서 만났다. 늦게 온 형 노먼이 카운터에 앉으며 술을 시킨다. "보일러메이커 둘!" 바텐더가 300밀리리터 되는 잔에 가득 담긴 맥주와 함께, 우리식 스트레이트 잔보다 조금 큰 숏글라스에 위스키를 채워서 두 개씩 내놓는다. 노먼은 숏글라스를 맥주잔에 던지듯 집어넣는다. 맥주 거품이 올라오면서 넘쳐흐르는 잔을 들고 '원 샷' 한 뒤 빈 잔 속에 든 숏글라스를 입에 한번 물었다가 내뱉는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동생에게 말한다.

"나 사랑에 빠졌다."_[흐르는 강물처럼] 속 한 장면_128

 

 영화는 마음 속에 피어난 사랑의 가슴벅찬 감정을  "보일러메이커(폭탄주)"를 들이키는 이 한 장면으로 표현한다. 술이 식도를 타고 들어가 위에서 다시 그 취기를 식도 위로 올려보낼 때 느끼는 화기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의 싱크로율..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