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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자 저술가이고 또한 정치가이기도한 김진애가 이 책의 저자다. 그녀의 별명이 김진애너지인 것은 바로 영역을 넘나드는 그녀의 열정일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녀의 열정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부제인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도시를 만들고 또 도시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조직하는지 보여준다. 인류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24시간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우리가 움직이고 먹고 노는 곳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시간이 건축과나 도시과 학생이 아닌 이상 많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공간에 닮아가듯 현대 우리를 만든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김진애가 도시를 탐사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호기심이다. 의문을 하지고 익숙한 것에 물음표를 던져라.
첫 경험은 그렇게도 생생하다. 당신에게도 분명 첫 경험이 있다. 첫 경험의 생생함을 기억해내라. 다시금 그때의 열정이 불붙을 것이다. 인생에서, 일에서, 삶에서 최악의 상황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다 그게 그거인 것 같고 다 알아버린 것 같고 더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상황, 그저 습관처럼 되어 버린 일과 삶은 더 이상 어떤 호기심도 발동시키지 않는다.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삶은 멈춘다._p24
대학원에 들어와서 본의 아니게 해외 출장을 많이 나가게 된다. 근래에는 사운드워크(soundwalk)라는 좋은 핑계 거리가 생겨서 외국 도시를 걸을 기회가 많아졌다. 지난 5월에 방문한 시애틀은 잘 정비된 도시처럼 느껴졌다. 도시공간은 블럭 단위 이루어져 길을 찿기도 쉬웠고 마치 그리드(grid) 속을 지나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스톡홀름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유기적인 도시의 느낌이랄까. 무언가 꾸물꾸물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구도심 감라스탄(Gamla Stan) 지역은 옛 골목길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물 사이와 좁은 보도가 만드는 수직적인 경관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신도시의 위태위태하고 위압적인 풍경과는 전혀 다른 좀더 인간 냄새나는 친근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건물 사이 사이 마다 마주치는 골목은 걷는 이들에게 매번 새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미로 같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길을 잃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헤매이며 또 무엇을 만나고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한참을 헤매던 기억이 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그 무엇을 잃어보는 것이다. 확신을 갖던 그 무엇,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그 무엇, 선입견, 편견, 자기확신 같은 것을 잠시 유보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물론 우리는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찾다가 길을 잃는 것이다. 그 잃는 과정에서, 그리고 길을 다시 찾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타난다. 기대하지 않던 것, 위험스러워 보이던 것, 낯선 것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행운의 여신이 어떻게 미소 짓느냐에 따라 보물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우연처럼 보이는 그 보물이 때로는 운명이 될 수도 있다._p42
길을 잃어야 찾을 수 있는 보물들, 어떤 것들일까? 당신의 기억을 곰곰이 들추어보라. 길을 잃으면 진귀한 보물을 찾게 된다. 길을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길을 잃어 보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계회대로만 된다면, 당신의 사업이 궁리한대로 순항만 한다면, 당신의 일이 척척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결국 진짜 보물은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당신의 방황을 축복하라. 그 축복의 순간을 위해서 때로 방황하라._p52
어떤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복잡해서 어느 하나 정리할 수 없었던 건들이 실 하나로 쫙 꿰어지는 그런 순간. 엉클어진 실타래 중 어느 선 하나를 잡고 쭉 뽑았더리 모두 풀리는 순간. 이렇게 사물이나 사건의 핵샘을 보는 능력을 통찰력이라고 한다. 그 순간의 기쁨은 지적 충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배 욕망과도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존재의 원리를 파악했다는 것은 그것을 통제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완벽히 통제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찰력이 중요한 이유는 사물의 그리고 사건의 핵심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만약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그것이 부정적 것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파워는 바로 통찰력에서 나온다. 핵심 개념을 세우고 개념을 스토리로 전개하는 파워, 어떻게 90분 동안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나? 통찰력이란 그렇게 중요하다. 전체를 통찰하는 힘, 구조를 파악하는 힘, 핵심을 파악하는 힘, 개념을 세우는 힘,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힘, 통찰력은 우리 모두 지향해야 할 파워다._p68
지적 감동의 힘이란 사람을 뒤흔드는 통찰의 힘이다. 이제까지의 자신의 그릇을 뛰어넘는 순간, 자신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차올라 넘칠 것 같은 순간, 갑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을 발견하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떠오르며 전체가 조망되는 것 같은 순간이다. 아마도 계시의 순간이나 깨달음의 순간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_p80
이런 순간을 위해서 단순화하라, 핵심을 잡으라, 전체를 파악하라! 이게 바로 개념이다. 이게 지적 파워다. 이게 통찰력이다. 복잡하기로는 더없이 복잡한 도시라는 복잡계를 통찰할 수 있는 힘, 이것이 개념의 힘이다. 지적 감동의 그 순간을 축복하라!_p80
나는 건축과를 나왔지만 건축과 도시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전무하다. 일전에 서현 교수님과 사운드워크(soundwalk)를 나간 적이 있다.
선생님께 내가 물었다. "교수님, 도시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은데요, 뭐 좋은 책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서현 교수님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해주셨다. "뭔 책을 읽어. 그냥 걸어. 계속." 이런 것이 우문현답인가. 사운드워크 프로젝트 때문에 언 한 달 간을 걸었다. 명동에서 시청 그리고 광화문까지. 매번 걸으면서 느꼈던 점은 서울은 참 걷기 좋지 않은 도시라는 것이다. 우선 도시가 근대화 되면서 자동차 중심으로 계획되고 발전해 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딜가도 매연과 자동차 소음 그리고 오토바이 소음이 들린다. 그러니 도통 편안하게 걸을 수가 없다. "걷기 좋은 도시가 실기 좋은 도시"라는데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영 걷기에 좋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홍대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들 중 하나는 홍대가 그나마 걷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신촌이나 이대 그리고 심지어 이태원도 걷기 좋은 공간은 아닌듯 하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이고 상대적이다.)
만약 도시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우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각(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도시를 물리적이고 수치적인 무채색 공간으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장소로서 이해해야 한다. 장소는 기억이 머무는 공간이고, 시간과 역사 개념이 들어간 공간이다. 1,2년 사이에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사라지는 공간에서 어느 누가 시간을 담을 수 있겠는가.
제인 제이콥스는 ‘스트리트 아이즈(street eyes)’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차 타고 교외 나가서 띄엄띄엄 살며 교통지옥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사는 게 좋은 도시가 아니라 길이 살아 있고 길에 사람들의 눈이 24시간 존재하는 도시가 좋은 도시이며 거리에 활력이 있어야 범죄도 줄고 거리 경제도 살고 세수도 는다는 지론을 폈다._p120
도시가 체제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면 권력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 문화체제가 모두 도시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_p153
사람에 빠질 수 있는 능력은 가장 범상하면서도 아주 특출난 능력이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 능력이지만 또 자칫 숨어버리는 능력이다. 자신을 비사교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시에서는 누구나 사교적이 될 수 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사람들과 스치는 그 순간을 최고로 만들 수 있다._p245
작은 도시들이 살아남고 번성하게 하려면 우리 사회도 근본적인 산업구조, 기회구조, 교육체계, 유동구조를 보다 다양한 네트워크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_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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