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 전 나는 봄으로 돌아갔다...
“내가 벌써...돌아가신 어머니와 똑같은 나이가 되었어....”
■ 오랜만 찾은 어머니의 묘소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고 그는 호접몽처럼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마법처럼 “14세”의 나카하라로 돌아간다. 14살로 돌아간 나카하라. 그의 삶은 다시 활기로 가득찬다.
“나는 다시 한번 14세의 시간을 살아가는 행복을 되새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어렸을 적에는 하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고, 삶을 더욱 풍부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마법의 초점을 판타지가 아닌 실존에 맞추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주인공의 삶을 돌아보는 문학적 장치로써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인공이 “14살”적에 갑자기 아버지가 가정을 떠나버린다. 그 후 어머니는 '나'와 어린 동생을 홀로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시고 만다. 48세의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그 때 아버지가 왜 가정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 시간은 점점 흘러 아버지가 떠나는 날이 왔다. '나'는 떠나려는 아버지를 붙잡고 싶었다. “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것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아버지 보다 먼저 기차역에 도착해 아버지를 기다린다. 드디어 역에 나타난 아버지...그는 아버지를 붙잡으며 말한다.
"아버지가 사라진 다음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알아?“
하지만 '나'는 떠나는 아버지를 잡지 못한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도 지금 나는...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는 걸 알았어. 오사카에 가서 양복 일을 배운 것도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지. 사회에 나가면 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말았지...전장에서 돌아와 네 어머니를 만났을 때도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어. 그렇지만 구라요시를 떠날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그리고 얼마 후 너희들이 태어났지. 참 행복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어떤 충동이 있었지. 단 한번의 인생인데...이대로 흘러가나...그런 생각이었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는 알아. 그러나 지금 난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다...너도 내 나이가 되면 내 기분을 알 수 있을 거야. ”
'나'는 아버지를 잡을 수 없었다. 이미 아버지와 같은 중년의 인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중년에 접어들어 다시 한번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만 ‘나’였다.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나? 주위에 이끌려 수동적인 삶을 살아오진 않았나.
■ 이 책은 무력한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연극 『셜리 발렌타인』.-평범한 주부인 셜리 발렌타인은 현실이 갑자기 감옥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 자신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그리스의 해변으로 향한다- 과 영화 『디 아워스(The ours)』-1998년 발간된 마이클 커닝햄(Michael Cunningham)의 퓰리처 수상작을 바탕으로 줄리안 무어,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등 세 여자가 각기 다른 지역, 각기 다른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와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열네살』은 『셜리발렌타인』보다는 『디 아워스』에 가깝다.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길은 『셜리발렌타인』처럼 즐겁고 신나는 일이기 보다는 『디 아워스』나 『열네살』처럼 힘든 결심과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씩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이 삶이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인가? 나의 삶이란 무엇일까? 내 삶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의 나그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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