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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영화

[영화] 판의 미로_우리가 생각하는 동화는 과연 현실보다 아름다운가

 

 

 

 사람들은 동화라 하면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가 읽은 동화들의 내용을 잘 되짚어 보면 우리의 동화는 공포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무섭고 현실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빨간 망토의 경우,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고, 손녀딸까지 잡아 먹으려 한다는 설정이 들어가 있고, 인어 공주는 목소리를 잃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리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어떤가 길거리에서 소녀가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바로 그 동화의 내용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두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한 마녀의 유혹 그리고 그 마녀를 오븐에 넣어 죽여버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영화 판의 미로는 1944년 스페인을 배경으로 무장한 반군들이 깊은 산속에 숨어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을 하던 시대를 비춘다. 그리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건물들과 해골을 바라본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만삭의 엄마와 새아버지이자 정부군의 지휘자인 비달 대위가 있는 베이스 캠프로 이사를 간다. 오필리아는 동화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한 어린아이다. 이사를 가는 차량 안에서도 오필리아는 지하공주에 관한 동화를 읽는다. 그 동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어떤 거짓과 고통도 없는 지하 왕국이 있었고, 그곳에는 인간 세상을 동경하는 공주가 살고 있었다. 공주는 푸른 하늘과 산들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살을 꿈궜다. 그러던 어느날, 공주는 시중들을 따돌리고 지상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지상으로 나오자 눈부신 햇빛에 눈이 멀고 모든 기억을 잃었느니, 공주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조차 잃어버린 채 추위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공주의 아버지인 국왕은 공주의 영혼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다른 몸을 빌어서라도, 또 다른 장소, 언제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국왕은 그가 죽는 날까지 공주를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라도.

  

 그런데 오필리어는 이사 간 저택 옆에 있는 숲에서 동화 속 요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요정은 그녀를 판에게 인도하고, 판은 오필리아가 동화 속의 지하왕국 공주였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다시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이 영화는 넓게 보면 이상주의자가 잔혹한 현실과 싸우는 우화라고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대위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시계"로 대변되는 현실세계와 오필리아가 들고다니는 동화책을 대비시키며 현실과 이상세계를 대비시킨다. 오필리아가 믿는 이상적 사회는 "어떤 거짓과 고통도 없는 지하 왕국"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공주(이상향)가 마주한 세상(현실)은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춥고 배고프고 병들어 죽는 무서운 곳이었다. 파시즘 정권이 들어서고 자신들의 신념에 맞서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역사적 상황. 우리는 파시즘을 이상주의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파시즘 정권에 맞서 싸우는 반정부군이 꿈꾸는 세상이 이상향에 가깝다. 하지만 그 이상향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이상주의자 또는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의 권력자들처럼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권력자들에게 굴복하거나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마을의 의사가 죽음 직전에 비달 대위에게 조용히 내뱉은 대사는 더 울림이 크다. 

 

"아무런 의문없이 단지 복종을 위해 복종하는 것은 당신같은 족속이나 할 수 있는 거요, 대위"

 

올바른 말을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현실에 대항한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상주의자가 꿈꾸는 세상은 동화 속 지하세계처럼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동화같은 이상세계를을 꿈꾸는 것은 어린 아이들처럼 철없는 짓일까? 영화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공주의 아버지인 국왕은 공주의 영혼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다른 몸을 빌어서라도, 또 다른 장소, 언제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국왕은 그가 죽는 날까지 공주를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