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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사회와 인간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을 선물한 책_철학과 굴뚝청소부_이진경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의 얼굴은 더러웠고, 다른 한사람의 얼굴은 깨끗했다. 그럼 과연 이 두 사람 중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정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도 더러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 예화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_뫼비우스의 띠』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 예화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어울리지 않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라고 지은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이진경씨가 지은 이 책은 근대철학사 전반을 다룬 책이다. 그가 말하는 근대철학의 키워드는 『주체』와 『대상』 그리고 『진리』이다. 그런데 위 예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으로 양분되면 인식된 것이 사실(진리)인지 알 수 가 없게 된다. 우리가 인식하는 감각기관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 철학이 갖는 커다란 딜레마이다. 그래서 근대 철학자들은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탈출구를 제시한다.

 

이 책에는 두개의 텍스트가 공존한다. 하나는 대부분의 본문을 이루는 근대 철학사이고 다른 하나는 도판으로 구성된 부분이다. 이 구성방식은 진중권씨의 『미학 오디세이』3성대위법과 유사하다. 또한 내용의 흐름도 비슷하여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두 책은 서로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뒤에 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많은 부분을 책에서 발취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내 힘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작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부터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유명한 명제는 신학과 교회의 지배아래 있던 철학을 신으로 부터 독립된 ""라는 주체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다. , 근대 철학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근대철학은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의 흐름에 의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험주의는 유명론에 근본을 두고 있는데, 유명론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오직 이름 뿐"이란 뜻이다. , 보편적인 것은 없고 오직 이름만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무심코 "나는 인간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인간은 하나의 개념일 뿐, 우리는 각각의 개인들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유명론의 전통은 철학자 흄에 가서는 극한데 도달하게 된다. 그는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이요,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관념이라고 말한다. 흄에 따르면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라고 하는 항구적인 주체가 과연 있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가 청소부에게 새로운 기억을 주입(고스트 해킹)하면서 청소부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장면이나 『겨울연가』에서 준상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항구적이라고 생각했던 주체라는 개념을 의심하게 된다. ,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범주도 해체 된 것이다.

 

여기서 근대철학을 재건시킨 칸트가 등장한다. 칸트는 흄에 의해 해체된 주체와 진리의 개념을 복귀시킨다. 칸트는 "물 자체""현상"을 구별하여 생각한다. 만약 놀이 공원에 있는 이상한 거울이 있다고 하자. 그 거울을 통해서 본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평범한 거울로 본 모습과는 다른 왜곡된 형상으로 보여 진다. 우리는 사물을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을 "현상" 거울에 비추기 전 사물을 “물자체”라고 하는 것이다. 칸트는 여기서 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신 진리를 찾으려면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객관적 진리를 사고 주체의 속성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주체에게는 객관성을 주는 방법인데, 한마디로 주체와 객체를 동일한 것으로 결합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선험적 주체” 혹은 “절대적 주체”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기초 짓도록 함으로써 딜레마의 해소를 겨냥했지만, 그 결과는 딜레마의 이전과 자신의 입론에 대한 절대적 정당화였다. , 다른 입론이나 목소리를 자기 안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은 동일시하고, 다른 것은 배제하는 메커니즘을 작동함으로써,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을 “지금 사고하고 있는 것”으로 제한하고 봉쇄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결국 헤겔에서 절정에 이른 근대철학은 이제 새로이 근대적 경제를 뛰어넘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생기게 된다.

 

“실천”이란 개념으로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한계를 넘으려했던 맑스나(맑스는 대상을 활동적인 생활과정, 실천과정으로 파악했는데, 대상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 속에서 정의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성은 성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호텔이 된다.” 즉, 사회관계가 달라지면 그 본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의식”이란 개념으로 근대철학의 지반을 해체시킨 프로이트, 그리고 가치와 “권력의지” 개념으로 근대철학을 공격함으로써 새로운 문제 설정을 정립하려 했던 니체가 그 주요인물이다. 다른 한편 언어학을 경유해 근대철학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 역시 오늘날 중요한 흐름이다. 그것은 예전에는 주체의 작용으로 이해되던 의미나 판단이 사실은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구조에 속하는 것이란 명제에 기인한다.

 

여기서 근대적 문제설정을 벗어나려는 흐름을 전반적으로 특징짓는 유사성이 있다면 이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근대철학에서는 “주체”라는 범주가 선험적인 출발점이었다면, 탈근대적 문제설정들에서는 주체는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생긴 “결과물”로서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 요인이 사회적 생산관계(맑스), “타자”로서의 무의식(프로이트/라캉)이든, 권력이지(니체)나 생체권력(푸코)이든, 혹은 이데올로기(알튀세르)든 간에 말이다. 다른 하나는 지식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근대철학에서 그것은 인간의 인식에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이었고, 따라서 참된 지식으로서만 다루어졌다. 하지만 탈근대적 문제설정들에서 지식은 주체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담론”으로 정의되며,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효과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된다.

 

근대의 경계를 넘어가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각 사회에 필요한 주체로 되어 가는지, 혹은 특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주체로 생산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저자
이진경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5-02-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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